사막과 협곡 끝나는 곳, 신기루 같은 장밋빛 신전

 

  • 중앙일보·라푸마 공동기획 해외 국립공원을 가다 │ ⑦ 요르단 페트라 국립공원

황갈색 사암 산자락 아래 나바테아인의 왕릉이 늘어서 있다. 한때 화려한 위용을 자랑했을 능은 이제 세월에 풍화돼 희미한 윤곽만이 남았다. 하나 암벽을 일일이 쪼아 섬세하게 조각해낸 흔적은 지금 보아도 놀랍기만 하다. 능 사이사이 무질서하게 뚫린 구멍은 평민들의 무덤 터다. 사진 오른쪽의 암벽 사잇길을 돌아 나가면 알카즈네가 나온다.

 

영화 ‘인디애나 존스-최후의 성전’에서 고고학자 인디애나 존스(해리슨 포드)는 예수의 성배를 찾아 사막 한복판의 고대 신전으로 향한다. 말을 타고 협곡 사이를 얼마나 달렸을까,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이며 장밋빛 신전이 나타난다. 사암 절벽을 정교하게 파내어 지은 석조 건물이다. 이 붉은 신전은 SF 영화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사진)’에도 등장한다.

외계 로봇 종족의 운명을 가를 열쇠가 신전 암벽 뒤에 감춰져 있었다. 이 신전이 바로 고대도시 페트라(Petra)의 대표 건축물 ‘알카즈네(Al Khazneh)’다. 페트라는 고산지대 바위산을 일일이 깎아 만든 고대 도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요르단을 대표하는 국립공원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다. 그러나 이 모든 화려한 수사(修辭)는 경이로운 옛 도시를 마주하는 순간 부질없은 허사가 되고 만다.

왜 고대의 비밀을 추적하고 외계인의 흔적을 쫓는 영화마다 사막 한복판 페트라까지 찾아 들어와 촬영을 하는지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해야 이해할 수 있다.

글=나원정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 폐허 속에 되살아난 전설의 도시

 인생사에 빗댄다면 페트라는 팔자가 억센 도시였다. 2000여 년 전 아랍 민족 나바테아인이 맨몸으로 오르기도 힘든 해발 950m의 바위투성이 고지대에 도시를 건설했을 때부터 정해진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호시절은 화려했다. 나바테아인이 아라비아의 거상으로 부상하면서 페트라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교역의 중심지가 됐다. 그러나 사막 한가운데 도드라진 거점 도시는 로마제국의 표적이 됐다. 페트라가 106년 로마군에게 점령당하며 나바테아 문명은 쇠락했다. 그러나 페트라가 역사에서 자취를 감춘 이유는 따로 있었다. 6∼7세기 발생한 대지진이 삽시간에 도시를 집어삼켰던 것이다.

 수백 년 동안 전설 속에 잠들어 있던 페트라를 다시 깨운 것은 스위스의 젊은 탐험가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였다. 1812년 청년 요한은 요르단 남서부 지역을 탐험하고 있었다. 황무지와 가파른 협곡이 어우러진 도시 ‘와디 무사’에 도달한 그는 사막의 유목민 베두인족 사이에서 전해오던 전설을 듣게 된다. 와디 무사 인근에 보물이 감춰진 고대 도시의 폐허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페트라였다.

 이미 페트라에 정착해 살고 있던 베두인족은 자신의 생활 터전을 침범당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요한은 베두인족 가이드를 앞세워 협곡 틈새로 숨어들었고, 마침내 폐허 속에 잔존해 있던 나바테아인의 도시를 발견했다.

# 시공을 초월한 무덤가 연회

페트라 발굴 200주년을 한 해 앞두고 청년 요한의 자취를 뒤쫓아 갔다.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버스를 타고 남서쪽으로 3시간쯤 달렸다. 암만에서 멀어질수록 황갈색 바위산만 첩첩이 쌓여갔다. 용광로처럼 타오르던 태양이 기울어갈 즈음 숙소가 있는 페트라 인근 도시 와디 무사에 도착했다.

 마침 일주일에 세 번 페트라의 야경을 공개하는 날이었다. 오후 8시쯤 페트라 국립공원 입구로 들어섰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둠을 노란 양초 불빛이 드문드문 밝혔다. 페트라 입구로 불리는 협곡으로 들어섰다. 암벽으로 둘러싸인 길인데도 왠지 모르게 푸근했다. 협곡 사이로 올려다 보이는 좁은 밤하늘에는 은하수가 흐르고 있었다.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혀 쏟아지는 별빛을 음미했다. 보드라운 흙길을 1㎞ 조금 넘게 밟았을 즈음 협곡이 끝났다.

 양초 불빛에 물든 알카즈네가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알카즈네(베두인어로 ‘보물창고’)라는 이름 이전에 이곳은 나바테아 왕 아테라스 3세의 무덤이었다. 촛불 수십 개가 일렁이며 무덤가를 그윽하게 밝혔다. 이윽고 악사가 요르단 전통 관악기로 옛 왕가에 얽힌 곡조를 연주했다. 나바테아인은 죽은 자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 무덤가에서 자주 연회를 열었다고 했다. 민트향이 나는 요르단차로 나바테아식 풍류를 흉내냈다. 고대 왕이여, 페트라의 밤을 위해 건배! 알카즈네를 향하여 찻잔을 들었다.

# 페트라의 장밋빛 보물창고

이튿날 오전 9시. 전날 밤의 여운을 곱씹으며 다시 페트라를 찾았다. 어둠 속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유물이 툭툭 모습을 드러냈다. 이집트의 오벨리스크(태양신 숭배의 상징물)를 닮은 석조 무덤과 헬레니즘 양식의 신전이 길가에 즐비했다.

 협곡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나바테아의 독자적인 건축기법이 눈에 띄었다. 전날 만난 알카즈네가 대표적이었다. 너비 30m, 높이 43m의 알카즈네는 이음새가 거의 없이 견고하고 매끈했다. 사암 덩어리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일일이 조각했기 때문이다.

 페트라에는 알카즈네 말고도 수십 기가 넘는 신전과 무덤이 있다고 했다. 아직 도시의 4분의 1만 발굴했을 뿐이라는 설명이 믿기지 않았다. 개중에서 가장 빼어난 것이 알카즈네였다. 알카즈네는 이집트 파라오의 보물이 감춰져 있다는 전설 탓에 뒤늦게 ‘보물창고’라는 이름을 얻었다. 일확천금을 꿈꾼 베두인족 사이에 결투가 끊이지 않아 지금도 유심히 보면 총알 자국이 남아 있다고 했다.

 관문처럼 버티고 선 알카즈네를 지나 로마의 영향을 받은 웅장한 건축물을 돌아봤다. 돌산을 디디고 올라가 고대 왕의 무덤을 차례로 매만져 보고서는 당나귀를 타고 국립공원 끝으로 빠져 나왔다. 하루 반나절 이상 머물렀지만 자꾸 아쉬워 뒤를 돌아봤다. 전체 거리가 5㎞에 불과한 페트라 국립공원을 2∼3일씩 관람하는 관광객이 많다더니, 그제야 이해가 갔다.

 당나귀는 베두인족 청년이 이끄는 대로 페트라에서 자꾸만 멀어져 갔다. 달빛이 좋은 날이면 남몰래 페트라에서 잠을 청하곤 한다는 그가 순간 몹시 부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