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아반도 숨은 진주 요르단

 

1800년대 초. 스위스 여행자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 하르트는 여느 탐험가와 마찬가지로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고대 유적 발굴에 빠져 있었다. 그는 북아프리카에서 유물을 발굴할 심산으로 서방인을 적대시하는 아랍사람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시리아에 잠입해 아랍어를 배우고 이슬람교도로 행세했다. 그러던 중 다마스쿠스에서 카이로로 가는 길에 현지인에게서 솔깃한 정보를 얻는다. 엄청난 고대유적이 요르단 와디무사 계곡에 숨겨져 있다는 것. 그가 이를 놓칠 리 없었다.

하지만 그 지역은 오직 베두인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금지된 땅이었다. 그곳에 잠입하기 위해 그는 꾀를 냈다. 선지자 아론의 무덤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무덤에 염소를 제물로 바치러 간다는 이유를 댔다. 1812년 8월, 염소 한 마리를 이끌고 그는 마침내 금지된 땅에 `입성`했다. 바로 천년 고도 `페트라`가 다시 세상에 나온 순간이었다.

기원전 300년 전 아랍계 유목민 나바티안족이 건설한 고대도시 페트라는 로마제국 도시 제라시와 다마스커스를 잇는 교역로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대상무역이 쇠하고 수차례 외침을 받아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내년이면 페트라가 스위스 탐험가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지 200주년이 된다. 영국 BBC방송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50곳` 중 16번째로 꼽은 세계 7대 불가사의 페트라. 영국이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고 했듯이, 페트라는 요르단 사람들이 중동 석유를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다고 자랑하는 국보다.

하지만 페트라가 요르단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울에서 직항이 없어 아부다비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가야 해 열네댓 시간은 족히 걸려야 요르단 공항에 도착할 수 있다. 여기서 다시 차로 세 시간 남짓 달려야만 페트라에 닿을 수 있다. 하지만 페트라를 볼 수 있다는 설렘에 장도의 피로도 느껴지지 않았다.

높이 200m의 바위산과 협곡 `시크(Siq)`를 지나 마주한 것은 바로 페트라의 상징인 알카즈네였다. 6개의 원형 기둥이 받치는 2층 구조에 BC 1세기께 헬레니즘 양식으로 건축한 이 신전은 고대 도시 페트라의 관문과 같다. 알카즈네를 지나면 바위산에 숨어 있던 어마어마한 규모의 고대도시 페트라가 나타난다. 사방에 붉은 사암으로 이뤄진 거대한 바위산에 깎아 만든 고대도시는 그 장대한 규모와 놀라운 건축기법에 그야말로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암벽을 깎아 만든 신전과 극장, 목욕탕에 상수도 시설까지 갖춰져 있다.

마치 시간이 멈춰 버린 것 같은 붉은 사암도시 모습은 `영원한 시간의 절반만큼 오래된, 장밋빛 같은 붉은 도시`라고 묘사한 버곤의 시구절을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한다.

천년 고도 페트라의 관문 알카즈네는 6개의 원형 기둥이 받치는 2층 구조에 헬레니즘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유적지 입구에서 서쪽 끝 알데이르까지의 거리는 5㎞ 정도인데 전체 유적의 4분의 1만이 발굴된 것이라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페트라를 제대로 보기에 하루는 짧다. 특히 낮에만 봐서는 페트라를 모두 봤다고 할 수 없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오직 하늘의 별의 안내에 따라 알카즈네의 밤을 경험해 봐야 한다. 낮과는 또 다른 잊지 못할 낭만과 운치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요르단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명소는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지역으로 해저 400m 지점에 위치한 소금바다, 사해다. 이곳에 몸을 담그면 수영을 못하는 사람도 구명조끼 없이 저절로 몸이 둥둥 뜨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매년 1m씩 줄어 400년 뒤 완전 마를 것으로 예상되는 사해는 보통 바다의 염분 융해율보다 약 5~6배 더 높은 염도를 함유해 어떠한 생물도 살지 않지만 각종 유기물이 들어 있어 피부병이나 류머티스 등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사해 동쪽 4㎞ 지점에 위치한 마인 온천은 해저 150m 지점 계곡 현무암 사이 폭포온천으로 유명하다. 2000년 전 예수 당시에 헤롯왕이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자주 목욕을 즐긴 곳으로 전해져 지금도 폭포가 낙하하는 온수마사지를 받기 위해 방문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요르단의 장점은 한 시간 내에 산, 바다, 사막 어디든 닿을 수 있다는 점이다.

또 80만개가 넘는 고대유적들이 전국에 널려 있는 `열린 박물관`을 방불케한다. 사실 이집트와 이스라엘에 밀려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아 왔지만 요르단에는 도처에 성지들이 있다.

암만 남쪽 도시 마다바에는 세인트 조지 교회 바닥에 AD 560년께 만든 세계 최고ㆍ최대(25X5m)의 모자이크 지도가 있다.
 

    약 200만개의 천연돌로 만들어진 이 지도는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뿐만 아니라 이집트 나일강부터 터키까지 담고 있어 성서지리학의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또 마다바에서 서북쪽으로 약 10㎞ 지점에는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시킨 모세가 120세 나이에 마지막으로 가나안땅을 바라본 후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지는 느보산(해발 805m)이 자리잡고 있다.

사해북쪽 10㎞에 위치한 요단강 동편에는 예수가 세례를 받았던 베다니가 있다. 성경에 따르면 2000년 전 세례요한이 예수에게 세례를 베풀었던 이곳에는 세례 때 사용하던 물저장 탱크ㆍ 교회터, 예수가 세례를 받았던 곳과 세례를 받은 후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왔다는 내용이 희랍어로 새겨진 모자이크 바닥 등이 발견돼 있다. 2000년 교황 바오로 2세가 이곳을 방문해 정식으로 예수 세례지로 인정했다. 특히 이곳은 예루살렘과 느보산 중간 지점으로 엘리야가 승천했다는 곳으로 추측된다.

역사의 나라 요르단은 이처럼 무수한 성지순례 유적지를 보유하고 있지만 동시에 로마의 흔적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그리스ㆍ로마 유적이 그리스ㆍ로마보다 오히려 더 온전히 남아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요르단 수도 암만이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 후계자 프톨레마이오스 때 필라델푸스(BC 285~246 재위)에게 정복당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정복자의 이름을 따서 암만은 당시에 필라델피아로 불렸다.

암만 북쪽에 위치한 제라시는 BC 332년 알렉산더 대왕이 건설한 그리스ㆍ로마제국 유적도시로 동양의 폼페이 혹은 1000개의 기둥도시라고도 불린다. 암만에서 가장 높은 언덕인 해발 850m에 위치한 제벨 알카라(시타델)는 1만8000년 전 구석기시대부터 인간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곳에 헤라클레스 신전 석주기둥과 동상의 일부로 추정되는 거대한 손과 팔꿈치 일부가 남아 있다.

암만은 언덕의 도시라 불릴 만큼 20여 개 언덕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돼 있어서 언덕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도심 전경이 볼 만하다. 특히 정부 지원을 받아 모두 베이지색 페인트 칠을 한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다. 도심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암만 다운타운에 있는 재래시장을 가볼 만하다.

여름 레포츠를 즐기고 싶다면 요르단 유일의 항구도시 아카바를 가보자. 암만에서 남쪽으로 4시간을 자동차로 달리면 태평양이나 동남아의 럭셔리 리조트를 연상시키는 이국적인 휴양도시가 눈에 들어온다. 솔로몬왕 시절 남방으로부터 각종 보석과 향품, 백단목 등을 수입하던 항구였던 이곳은 지금은 럭셔리한 리조트가 밀집한 휴양지로 유명하다.